전화통화




사무실에서, 특히 회의중이거나 집중에 있을 때 예상에 없던 - 대부분 반갑지 않다 - 전화를 받으면 맥이 딱 끊긴다. 그럼 상대방이야 무슨 악의가 있었겠냐만은 어느순간 짜증을 내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 마련. 언젠가 한번은 콜센터 전화에 너무 시달리다 못해, 업종과 전화의 종류별로 통계를 내봐야 겠다는 쓸데 없는 생각까지 해봤다. 문제는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 하는 건데, 이러한 전화들에 맥이 끊겨 하던 일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경우엔 또 반대로 재밌어 진다.


고객님, BBB인터넷입니다. AAA인터넷 쓰시면 더 싸게 바꿔보지 않으시겠어요?
저 BBB인터넷 이용하고 있는데요?
아 그러십니까?
어떻게 전화하시면서 제가 BBB인터넷 쓰고 있는것도 모르고 전화하시나요?
뚝-

실제로 40대 정도는 된 듯한 여성 텔레마케터는 나의 질문에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다시 걸어서 왜 끊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굳이 입장을 따지자면 뚝 끊어야 하는 쪽은 내쪽이 아니던가?


고객님, CCC보험입니다. 저렴하고 한정판매하는 보험상품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엇, 저는 CCC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는데 어떻게 전화하셨나요?
제휴사 고객정보를 통해 전화드리게 되었습니다.
엇, 아무리 생각해도 제휴되었을 만한 서비스에 가입한 경험이 없습니다. 어떻게 전화하셨나요?
이렇쿵 저렇쿵 한 5분 동안 집요하게 나에게 전화를 하게 된 경위를 실갱이 한다.

결국 다음날 전화를 한통 받게 되었고, 약 10년전 반짝 인기있던 온라인 경매 사이트 - 이름하여 WAAWAA, 기억하시나? - 가입 정보가 CCC보험에서 전화가 오게된 원인이었다. 과거의 영광인 와와는 현재 무수한 쇼핑몰 중에 하나로 운영되고 있는데 사업자가 바뀌면서 개인정보 이용약관이 바뀌었더란다. 어쨌든 반갑기도 하고 씁씁하기도 했던 기억.


안녕하세요, 헤드헌팅 회사 DDD입니다. 문윤승부장님 되시나요?
네 접니다 - 여기서 잠깐, 지금 이 전화는 사무실 자리전화로 진행되는 대화이다!
이번에 포지션이 하나 나왔는데 주변의 추천을 통해 전화드리게 되었습니다.
약 10분간 이렇쿵 저렇쿵

종종 사무실 자리전화로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본인들도 좀 애매한지 자리전화로 통화하는거 괜찮냐고 물어본다. 회사기밀을 알려주는것도 아닌데 굳이 안될거 까진 없지 않나 싶다. 어쨌든 헤드헌터로부터 전화를 받는 시즌이 되면 아, 내가 일을 오래 하긴 했나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데 이때가 기회라며 헤드헌터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늘어놓는다. 회사에서는 도무지 해주지 않는 직업상담, 커리어패쓰 뭐 그런것들.

현재 나는 외부의 평판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내 경력에 반한 연령 - 이제 슬슬 약발도 떨어지고 있어서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다 - 에 화들짝 놀라는 편인데 이런저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본론은 이미 그 꼬리조차 없어져 버린 후가 된다. 지금까지 한 직장에서만 만 8년, 지금까지 뭘 했고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는 잘 생각하는 일요일을 보내자. 그나저나 헤드헌터 EEE실장님에게 메일주소 보낸다는 것을 깜빡했네, 월급 많이 주고 여유로운 회사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으니 내일은 잊지 말자.